제주오름

제주 오름의 민간신앙과 제의문화의 전승 방식

world-6 2025. 4. 23. 09:35

1. 오름은 신이 깃든 장소였다 – 제주의 자연신앙 배경

제주도의 오름은 단순한 지형적 구조를 넘어, 예로부터 신이 머무는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제주 사람들은 산과 바다, 바람과 불, 돌과 물에 신이 깃든다고 믿었고, 특히 오름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으로서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평야와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서 오름은 드물게 솟아 있는 땅의 돌기였고, 그것은 곧 자연의 숨결이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곳이었다. 실제로 제주도 각지에서는 오름 정상이나 분화구 부근에 신당, 제석단, 돌탑, 샘터 같은 제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마을 공동체가 함께 모여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 전해졌다. 오름 자체가 특정 신의 거처로 여겨졌고, 그 신의 기분과 움직임에 따라 마을의 평안과 재난이 좌우된다는 믿음은 세대를 거쳐 구비 전승되어 왔다. 이런 문화적 배경은 오름을 단지 풍경이 아닌, 제주인의 정신적 중심지로 만들었다.

제주 오름의 민간신앙과 제의문화의 전승 방식

2. 오름 제사의 형태와 의미 – 마을의 안녕을 비는 공동 의례

오름에서 진행되는 제의는 제주 고유의 민간신앙이 집약된 형태로,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큰 행사였다. 마을마다 신을 모시는 오름이 정해져 있었고, 해당 오름에서 매년 정해진 날에 마을 제사가 올려졌다. 이 제사는 보통 ‘본향당굿’ 또는 ‘영등굿’과는 달리, 보다 간소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그 진지함과 정성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제사에서는 제주 전통 음식인 돼지고기와 오곡밥, 술, 떡이 올려졌으며, 제관 역할은 마을 어르신이나 무속인이 맡았다. 제의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농사의 풍요, 가뭄 해소, 질병 퇴치, 마을 평안 등을 비는 실질적 목적을 지닌 공동체 의례였다. 오름 제사는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생활을 연결짓는 방식이었고, 의례를 통해 주민들은 자연과 자신이 하나라는 감각을 되새기게 되었다. 특히 제의는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경외감, 어른에 대한 존경, 마을에 대한 소속감을 자연스럽게 전수하는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3. 오름 제의문화의 전승 방식 – 구술, 몸짓, 기억으로 이어지는 신앙

제주의 오름 제사는 문서로 남기기보다 입으로 전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방식으로 계승되었다. 어릴 적부터 제사 준비를 함께 도우며 음식을 차리고, 제의 순서를 관찰하고, 제물의 의미를 듣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신앙의 구조와 질서를 습득했다. 특히 제주어로만 전달되는 신화적 언어, 제사에 쓰이는 방언식 구호, 할머니와 어머니가 전해주는 제사의 이야기 등은 전승 방식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또 제사 전날에는 마을 전체가 제의 준비를 함께하면서 노동과 신앙이 결합된 전통적 협업 문화가 형성되었고, 이는 공동체 결속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해주는 "옛날 ○○오름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구술은 제사의 역사와 오름의 신화적 맥락을 엮어주는 살아 있는 텍스트였으며, 이 구술의 반복은 기억의 축적이자 문화의 연속이었다. 제주에서 오름 제의는 **‘문헌 없는 신앙 체계’**이자, 자연과 인간이 맺은 오래된 약속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4. 사라지는 의례, 그리고 새로운 전승을 위한 노력

현대사회에 들어서며 오름에서의 제의 문화는 점차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도시화, 종교 다변화, 세대 간 신앙 해석의 차이 등으로 인해, 마을 단위의 제사는 축소되거나 사라지기도 하고, 오름 자체가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신성 공간의 의미가 퇴색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문화의 소멸을 막기 위한 다양한 보존 및 재생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문화원과 지역연구소, 일부 마을 주민들은 오름 제사의 유래와 형태를 기록하고 디지털 자료로 보관하며,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오름제 복원 프로젝트’나 ‘구술문화 채록 사업’은, 과거의 제의가 단순히 전통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생태적, 공동체적 자산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제의 문화를 축제 형태로 재구성하여, 외부 방문객과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는 현대적 의미의 신앙과 공동체 재생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오름은 여전히 신을 품고 있고, 그 신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