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 유산이자 관광 자원, 오름의 이중적 가치
제주도의 오름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독특한 지형이자, 생태적 다양성을 품은 자연 유산이다. 그러나 동시에 오름은 아름다운 풍경과 접근성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대표적인 자연 관광지로도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오름은 보존되어야 할 자연유산이면서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핵심 자원이라는 이중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곧 갈등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일부 오름은 산책로, 전망대, 주차장, 카페 등이 설치되며 ‘명소화’되고 있으며, 실제로 개발 이후 방문객이 급증한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식생 훼손, 야생동물 서식지 교란, 토양 침식, 쓰레기 증가 등의 환경 문제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민과 환경단체, 행정기관, 그리고 관광업계 사이에서는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를 두고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2. 실제 사례로 본 갈등 – 오름과 개발 이슈의 현장
실제 제주에서는 여러 오름이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등의 중심에 놓인 바 있다. 대표적으로 새별오름은 아름다운 억새밭과 부드러운 능선으로 인해 대규모 축제와 드라마 촬영지로 활용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탐방로 외 진입, 쓰레기 무단 투기, 식생 훼손이 급격히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출입이 제한되는 조치까지 내려졌다. 다랑쉬오름은 인근의 군사기지 및 개발사업 논란 속에서 문화재 지정 여부를 두고 주민 간 의견이 엇갈렸고, 군산오름 역시 전망대 설치와 상업시설 유치 문제로 마을 주민과 환경단체 간 마찰이 발생했다. 이처럼 오름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개발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오름이 누구의 것인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이 자발적으로 보존 조례를 마련하거나, 개발을 막기 위한 서명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3. 제도와 정책의 모순 – 균형을 찾기 어려운 현실
제주도는 2000년대 이후 ‘생태 관광’과 ‘지속 가능한 개발’을 표방하면서 오름 보호를 위한 정책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오름 중 일부는 ‘생태자원 보호구역’, ‘문화재 보호구역’, 또는 ‘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개발이 제한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적 일관성 부족과 이중 기준에 있다. 어떤 오름은 보호 대상이 되지만, 그 인근은 관광지구로 지정되어 개발이 허용되며, 같은 지형 안에서도 보존과 개발이 공존하는 이상한 장면이 벌어진다. 또한 오름의 지형학적 특성상 명확한 경계 설정이 어렵고, 행정 구획에 따라 서로 다른 지자체의 관할이 겹치면서 관리의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지역 주민들의 입장도 복잡하다. 생계를 위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싶어 하면서도, 무분별한 방문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개발도 안 되고, 보존도 못 하는’ 상태로의 고착화로 이어지며, 오름의 가치와 의미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4. 지속가능한 해법 모색 – 균형을 위한 새로운 접근
오름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고 보존과 개발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첫째로, 단순한 ‘출입 제한’이 아니라 오름별 특성에 맞춘 등급화 관리체계가 필요하다. 생태적 민감성이 높은 오름은 보존 우선으로 지정하고, 상대적으로 탐방이 용이한 오름은 탐방객 분산 효과를 활용하여 혼잡과 집중을 줄이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둘째로, 지역 주민이 오름 관리의 주체가 되는 마을 공동체 기반의 관리 모델이 요구된다. 주민이 오름의 생태를 이해하고, 직접 탐방객 안내, 쓰레기 관리, 식생 보호 등을 운영하는 경우, 외부 자본 중심의 개발보다 훨씬 지속 가능하고 공동체의 자긍심도 높아진다. 셋째로는 오름과 관련한 문화 콘텐츠, 예술 활동, 생태 교육을 통해 단순한 경관 소비가 아닌 의미 소비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름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 생명과 문화가 함께 조명될 때 진정한 가치가 빛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주 오름은 침묵 속에서 인간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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